우리나라의 설과 추석처럼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연휴다. 크리스마스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선물을 주고받고 개봉하는 재미가 더해져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도 시댁식구들과 함께 했는데 이번엔 크리스마스 트리가 없는 조금은 특별한(?)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어머니집에 오자마자 캣타워에 놓인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 캣타워가 반기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쿨하신(?) 시어머니는 이번해에는 트리를 따로 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뭐 트리 없으면 어떠냐. 11월부터 곳곳에서 지겹도록 봤던게 트리인데 뭘. 어쨌든 우리도 시댁식구들을 위해 준비한 하늘색 포장지로 감싼 선물들을 캣타워에다가 살포시 놓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며칠 전, 남편은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줬다. 이번 남편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바로 아이맥! 11인치 노트북만 사용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안쓰러웠다며 사준 21인치 아이맥이다. 늘 윈도우만 쓰다가 맥을 사용하니 배워야 할 것이 많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적응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
이날의 메인 디너인 프라임 립. 사진으로는 작아보여도 실제로는 엄청 크다. 역시나 남은 고기는 아직까지도 우리집 냉장고에 있다.
어머니와 어머니 남자친구가 만드신 크리스마스 이브 디너. 샌프란시스코 대표 맛집인 'House of Prime Rib'의 프라임 립을 사랑하시는 어머니 커플이 프라임 립과 소스를 직접 만드셨다. 빠질 수 없는 빵과 매쉬드 포테이토, 그리고 그린빈과 옥수수 크림 구이도 함께 먹었다.
크리스마스에 꼭 마시는 에그녹(Eggonog). 뭔가 느끼할 것만 같았지만 맛있었다. 에그녹과 브랜디를 섞어 마셨는데 칼루아 밀크맛이 났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와서 디저트를 먹었다. 피칸 파이와 베리 파이도 있었지만 배가 너무 불러 쿠키만 먹었다. 오른쪽 색색의 쿠키는 어머니 남자친구 아들이 직접 만든 쿠키인데 괴상하게 생겼어도 꽤 맛있었다.
크리스마스의 하이라이트인 선물 개봉할 시간이 왔다. 선물에는 모두 이름이 적혀 있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선물을 하나씩 개봉한다.
우리는 어머니 선물로는 어머니가 갖고 싶다고 하셨던 앞치마와 슬리퍼, 그리고 어머니가 좋아할 것 같은 록시땅 핸드크림과 Bite의 립스틱 세트를 준비했다. 어머니 남자친구 선물로는 노스페이스 자켓과 어머니 남자친구 아들 선물로는 아마존 기프트 카드를 준비했다.
이제 고딩이 된 어머니 남자친구 아들 Z. 어머니 남자친구는 아들에게 아이폰 X를 선물해주셨다. 아이폰을 보자마자 기쁨과 감동이 뒤섞인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고등학교 때 최신형 핸드폰을 받았을 때 처럼 Z도 또래 친구들에게 열심히 폰 자랑하고 다닐 것 같은 모습이 상상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돋구기 위해 티비에는 크리스마스 모자를 쓴 새끼 리트리버들이 돌아다니는 귀여운 동영상을 틀어 놓았다.
어떤 선물을 받을까 궁금해하며 열심히 선물 포장지를 뜯는 남편.
우리가 받은 선물은 커플 샤워가운과 소파에 놓을 캐시미어 담요, 책, 그리고 내가 갖고 싶었던 브룩스(Brooks) 자전거 안장. 그리고 정말 빵터졌던 선물은 저 길다란 집게다. 키 작은 내가 찬장에서 물건을 꺼낼 때마다 하도 높다고 투덜대서 그런지 사준 남편의 선물. 이 집게 덕분에 남편 도움 없이 의자나 사다리 도움 없이 위에 있는 물건을 잘 꺼낼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또 초콜렛 세트 2박스와 잭다니엘 세트, 브룩스 자전거 핸들, 여행용 스팀 다리미, 우리 사진이 담긴 스노우볼을 받았다.
선물 개봉이 끝나면 생기는 엄청난 쓰레기.
30개가 넘는 선물을 하나씩 뜯으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사실 중간에는 선물 언제 끝나냐며 지치기도 했다. 저녁 후에는 가족끼리 '스시 고 파티'라는 귀여운 카드게임을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없었지만 따뜻한 곳에 모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 있는 친정 가족과 한국의 추운 크리스마스가 그립기도 한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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